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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을 위하여

비거닝

by 파푸리카(papu)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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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닝

기후 위기 때문에, 동물이 불쌍해서, 건강에 좋다니까, ‘힙’해서 …뭐라도 하고 싶지만 완벽할 자신이 없다면,가늘고 긴 ‘회색 채식’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이런저런 이유로 비건에 기웃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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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p (버터 좀 주시겠어요?-이라영) 채식을 하면 먹을 게 없을까 봐 걱정하지만 고기에서 눈을 돌리니 오히려 더 많은 미식의 세계가 열렸다. 먹거리가 줄어들기보다는 다양해졌다. 고기를 ‘안 먹는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다양한 단백질 공급원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채식을 대하면 조금 문턱이 낮아진다.

 

단백질 음식하면 고기외에 생각나는 음식이 별로 없다. 아마 고기위주의 식단과 미디어의 찬양이 우리의 단백질 공급원을 획일화 시켜버렸는지도 모른다.


24p 서로의 생명을 지탱하는 관계로 연결될 때 우리는 위험 앞에서 더 단단해질 것이다. 지구를 구하지는 못해도 망가지는 데 동참하는 행동은 줄여야 한다. 적어도 망하는 시간을 늦출 수는 있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어떤가. 실제로 많은 비건이 다시 육식으로 돌아온다. 미국에서는 비건의 70%가 중도 하차한다. 그러나 비건을 경험하기 전보다는 고기를 덜 먹는다. 또한 다시 채식이나 비건을 시도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오십 보는 오십 보고 백 보는 백 보다-김산하)
29p 인간이 지구를 못살게 구는 가장 큰 이유를 딱 한가지 꼽으라면 다름 아닌 음식이기 때문이다. 못 믿겠으면 차를 타고 달려보라.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이든 간에 창밖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풍경은 뭔가 재배되는 경작지, 즉 농촌이다. 그 풍경은 당연하지 않다. 지금은 농경지이지만 한때 숲이나 습지였을 것이며, 오늘날도 그 모습 그대로이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고기라는 질문 -조지 몽비오 // 번역 김산하)
63p 축산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환경에 얼마간의 파괴를 일으키지만, 밖에서 기르는 것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이유는 비효율성이다. 방목은 살짝 비효율적인 게 아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낭비적ㅇ니 것이다. 방목에 쓰이는 지구의 육상 면적은 작물 재배 면적의  배에 이른다. 그러나 방목지의 풀만 먹은 동물이 생산하는 단백질의 양은, 인간이 하루애 섭취하는 81그램의 단백질 중 1그램에 불과하다.


(3분의 1 채식, 누워서 식은 죽 먹기-박규리)
110p 고기를 무언가로 대체하는 서양식 채식의 한계를 눈치챈 서양인들이 이제는 현란하게 야채를 다룰 줄 아는 동양의 음식 문화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예컨대 동양에서 오랫동아나 우수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친숙한 두부가 훌륭한 대안 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서양의 동네 슈퍼에서도 한두 가지 브랜드는 꼭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인도네시아의 메조와 비슷한 ‘뗌뻬’를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까지 생겼다.

 

전통 한식위주의 밥상이 더 각광받아야하는 이유다. 오랜 세월동안 야채로 섭취해온 영양분을 단시간에 침투해버린 서구화된 식단을 어느정도 다시 되돌려야한다.


(지속 가능하다, 건강하다면-이의철)
142p 많은 사람들은 ‘자연식물식’을 권하면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거냐며 암담해한다. 하지만 ‘자연식물식’은 한국인에겐 매우 친근한 식사 방법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인이 먹었던 방식이 ‘자연식물식’과 매우 가까웠다. 당시엔 밥을 고봉밥으로 먹고 주로 보리, 밀,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채소를 반찬으로 먹고, 과일을 별미 간식으로 먹었다. 당시엔 아직 ‘해표’ 식용유가 나오기 전이라 튀기거나 볶은 음식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문이었다-강하라)
171p 나를 어떤 정의된 존재로 구분하게 될 때 우리는 모두 실수하고 자만하기 쉽다. 내 범주에 속한 것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게 되며 그 범주 밖의 타자를 우리도 모르게 구분 짓게 된다. ‘비건’이라고 속단할 필요도, ‘비건’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한 번에 바꿀 필요도 없다. ‘비건’이라서 우월할 이유도 없으며 ‘비건’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려 해서도 안된다. ‘비건’은 인생의 수많은 선택과 취향, 경험 중 하나다. 나는 슬프고 강제하는 비거니즘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비거니즘이 좋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시도를 하는 것처럼 비건도 그즈음 비슷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완벽한 식단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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